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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다녀온 날
권두섭 (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울산에 가는 길은 참 멀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강남터미널에서 5시간이 걸린다는 울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울산에 거의 도착하는 지점에서 탱크로리 전복사고로 고속도로가 몇 시간째 불통이 되면서 5시간 걸린다던 시간은 7시간, 8시간으로 늘어났다. 현대중공업 현장은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공장밖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바닷가쪽으로 보이는 배 만드는 도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내하청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노조설립 당시 상황, 배가 만들어지는 작업 과정, 원청사업주인 현대중공업의 관여 내용, 하청업체들의 폐업 경위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조 사무실 창문밖으로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선글라스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늘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너편 주택골목길도 보였다.
2003. 8.경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에 사내하청 노조의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속해 있던 하청업체들이 2003. 9.부터 2003. 12.에 대부분이 폐업, 사업부문 폐쇄가 되었고 사내하청 노조 조합원들은 해고(사업장 배제)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지금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비정규직지회로 바뀌었다)과 소속 조합원들은 하청업체의 폐업과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는 현대중공업이 지배 개입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을 직접 상대방으로 하여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하였다. 폐업이 된지 6년 반만인 지난 3월 25일 대법원에서 그 사건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원청 사업주가 도급관계에 있다고 해도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관계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이나 지배력을 행사한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로, 대법원이 처음으로 원청 사업주의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결이다. 이 판결이 의미있는 판결이 될지, 찻잔속의 태풍이 될지는 이후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에 계속된다면 이 판결의 의미는 살아나고 커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나의 판결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한 조합원은 조합원으로 밝혀진 이후 작업장에는 가지도 못하고 탈의실에서 1달 가까이 대기하면서 ‘너 때문에 업체 폐업되게 생겼다.’ ‘너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도 쫓겨나면 좋겠느냐.’ ‘니가 마음만 바꾸면 다 살 수 있다.’는 등 온갖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퇴근하고 공장밖에 있는 노조사무실로 오면 늘 창문밖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사무실을 바라보는 현중 경비대원이 서 있었다. 밖으로 나갈라치면 한명이 따라붙는다. 그 외에도 인간이 감정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노동자는 2003. 8. 23. 노조 설립 이후 몇 개월동안의 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고 결국 요양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2007년 대법원으로 사건이 올라간 뒤로는 원고들과 참가인이 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조합원들을 만나지 못하였다. 이번에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토론회를 한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될 것 같다. 이 판결이 나기까지 많은 노동자들의 고난과 투쟁이 있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고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이슈가 되었고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결국 그 투쟁이 법원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구제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던져주었고 결국 이를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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