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과 제본 일로 시작한 전노협백서 발간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얼마 전 한내 식구들 몇 명이 숭인동을 가봤다. 숭인동과 창신동 일대가 변했다 하니 동원빌딩은 그대로 있는가 궁금해서였다. 종로구 숭인동 56-1 동원빌딩은 전노협과 서노협이 1991년 이사해 1995년 12월 해산할 때까지 있던 건물이다. 전노협 해산 후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는 전노협 회의실과 서노협 사무실 공간을 튼 곳에 짐을 풀었다. 약 50평 규모의 사무실이었다. 지금은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서고 지하철역까지 생겼지만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가 해산한 1997년까지만 해도 발간 벽돌에 초록지붕 동원빌딩이 그 일대에선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와서 한내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출발은 전노협백서 발간팀이다. 전노협은 조직을 해산하면서 자료정리, 백서발간, 운동사 발간을 결의했다. 6년간의 활동을 정리하고 운동적 평가를 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발전을 향한 전노협의 마지막 의무였다. 전노협 임원과 지노협 의장, 전노협후원회 선생님들로 발간위원회를 구성했다. 발간팀은 전노협에 상근하던 김종배와 정경원, 노동자 정치운동을 연구하던 박사과정생 김영수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전노협 상근자들은 “모든 자료는 자리에 그대로 두고 개인 짐만 챙겨라.”는 지침에 따랐다. 혹여 개인의 판단으로 자료를 유실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몇 명의 동지들이 낡은 철제 책상을 처리하는 일까지 해야했지만. 사무실 한쪽에 셀 수 없이 많은 사과상자가 쌓였다. 600개는 족히 넘을 양이었다. 저 많은 것을 다 정리해야 하는 것인가? 실무자는 세 명인데 백서를 만들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인가? 실무팀은 백서의 상을 잡기 위한 회의를 했다. 백서는 연대순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겠으나 각 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는 자료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기획하기로 했다. 팀장이 기획 초안을 작성하기로 하고 김영수와 정경원은 자원봉사자를 모아 자료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많은 자료를 풀어헤쳐 분류 정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자로 제본된 것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문서, 낱장 유인물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암담하던 때 백서팀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전노협이 있던 숭인동 동원빌딩 모습과 전노협 사무실 배치도>
김종배는 책장을 짜자는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았다. 자료를 만지다가 ‘책장이 필요하겠어’ 정도의 분위기가 되었을 때 쓱~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백서팀과 백서팀을 방문 온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나무를 나르고 못질을 하며 책장에 칠을 하고 있었다. 임대가 나가지 않아 비어있던 옛 전노협 사무실은 못 3천 개를 박는 목공소였고 사포질 한 나무 먼지와 흰색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는 공장이었다. 목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야 한다며 소주와 삼겹살을 사들고 지지 지원자들이 등장했다. 이황미와 차남호는 단골이었다. 사무실 뒤 쪽 비상계단에 앉아 삼겹살을 구웠다. 무모한 김종배를 성토하고 그날 ‘목공소’의 사건 사고를 이야기하며 깔깔댔다. 영수형더러는 공부하는 모습보다 못질하는 모습이 더 어울린다며 웃었다. 늘 지나고 나서 알게 되는 거였지만 ‘김종배는 다 계획이 있었다.’ 1996년 3, 4월 소음과 가루와 냄새 속에 고생한 덕에 책장 40개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도서관 모양새였다. 이제 자료를 잃어버리지 않고 풀어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 책장마다 조직 이름을 붙여서 자료를 1차 분류해 넣었다. 전노협 자료는 전노협이 만든 자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 민중운동을 총괄하는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활동을 반영하듯 다양한 자료들이 있었으니 몇 단계의 분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 분류 후 2차로 시기와 활동 내용별로 분류를 했다. 어디에 넣는 게 적절할지 애매한 자료, 분명히 본 것 같은데 또 나온 자료, 버릴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자료와 씨름을 했다. 자료정리는 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청석, 임동호, 이상서. 이 친구들은 김종배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초기부터 전노협백서팀에 발을 들이게 된 이들이다. 한 시대의 노동운동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저절로 머리속에 커다란 줄기가 잡혔고 막막하던 백서의 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목숨 건 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자료를 발견하면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정독하기도 했다. 힘든 줄 몰랐다. 학생들이 함께 밤을 새가며 일했다. 5월부터 7월 사이에 전노협의 주요 회의, 각국 사업자료, 지노협 자료를 정리할 수 있었다. 생산자가 전노협 이외의 자료들은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1차 분류만 하여 박스에 담아놓았다. 훗날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은 이 박스를 다시 풀어 자료를 정리했다. 이제 자료 정리를 끝내고 본격 글쓰기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또 김종배의 제안으로 사무실은 제본실로 변했다. 정리된 자료를 분실하지 않으면서 읽어보기 위해서는 제본이 필수였다. 분류된 자료를 적절한 두께로 나눠 책상 위에 올리고 권별로 색지를 끼워넣는다. 한쪽면에 본드칠을 한 다음 조금 마른 후 칼로 쓱쓱 긁어준 다음 색지를 뒤집어 씌워 책등을 만들었다. 무거운 것으로 눌러두었다가 하루밤 지낸 다음 권수와 분류 항목을 적어놓는다. 이렇게 제본한 것이 700권이 넘는다. 본드 냄새에 지친 날들이었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 자료를 정리하고 글쓰기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만 꼬박 6개월이 걸렸다. (다음호에 계속) ※ 전노협백서발간팀장 김종배는 1999년 8월 27일 명을 달리했다. ※ 이 글은 1년 6개월간의 전노협백서 발간 과정을 기록해놓은 정경원의 글을 재정리해 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