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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라이트 비판』, 김기협 지음, 돌베개
첨부파일 -- 작성일 2009-02-03 조회 778
 

뉴라이트라는 괴물들
-김기협,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2009)

엄기수(삶이 보이는 창 편집부)


이명박 정권 출범의 ‘배후’에는 뉴라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진행 중인 “규제 완화, 민영화, 부유층과 고소득층의 감세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p.25)은 뉴라이트 역사관과 일치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 개편의 진앙지 역시 뉴라이트 역사학계다. 소위 ‘MB 악법’이라 불리는 금융지주회사법이나 은행법, 저소득층 최저임금제의 위협하는 재벌 특혜법들과 신문·방송법이나 통신비밀 보호법, 국가정보원법, 마스크 금지법 등의 반민주적 법률들 그리고 의료법과 수도법 개악 등의 민영화 추진 법률들 역시 뉴라이트의 신자유주의 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상식 밖의 생각들과 정책의 추진은 뉴라이트의 전방위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제 뉴라이트의 담론은 눈앞의 정책들로 현실화되어 더 이상 그 행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이런 ‘기이한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해석의 열쇠를 제시한다. 저자는 뉴라이트의 인간관과 역사관, 민족관, 대북관, 대미관 등을 해부하면서 그들의 이념과 이데올로기, 담론을 입체적으로 비평한다. 그러나 저자가 문제 제기를 하는 방식은 그들의 객관적 오류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세계를 바라보는 아주 ‘상식’적인 시선과 관점으로 접근한다.

그도 그러한 것이 애초부터 뉴라이트의 사상적 기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매우 부실한 것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그뿐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학문과 현실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p.7) 한마디로 뉴라이트는 신보수주의·합리적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정치노선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인류가 처해 있는 상황에도 맞지 않는 반동적 노선”(p.9)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뉴라이트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현 정권이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노선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한 국가와 사회가 손상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p.11)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뉴라이트 사관의 근본적인 모순이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뉴라이트의 쌍두마차인 안병직과 이영훈은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에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이기적인 것이므로, 이 이기심을 살려두어야 거기에서 무한한 발전의 동력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인간관은 경제 관점에서만 역사를 재단하게 하고 인간의 다른 가치들은 소홀히 취급된다. 그래서 뉴라이트가 개인주의, 자본주의, 성장론을 맹신하는 역사 서술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단정 짓고 ‘자본주의가 곧 문명’이라고 믿는 자들에게 역사가 증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일제 강점기 친일 협력자를 옹호하거나 일제의 조선 지배를 찬양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가 경제 발전의 부산물이라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가진 자의 자유를 표방한다.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그들의 신앙처럼 고수하며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낸다. 우리는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를 통해 위력을 떨치던 신자유주의주의 끔찍한 결과를 확인한 바 있다. 미국 공화당 정부는 대규모 감세와 사회복지 정책의 축소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날개를 활짝 펴주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전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 그리고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참담한 결과였다. 이러한 상위 2퍼센트를 위한 양극화 전략이 신자유주의의 정체이며 그들이 숭배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기초한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나는 이것이 공산권 붕괴를 ‘자본주의의 성공’으로 믿는, 그래서 자본주의를 유일한 ‘문명’으로 숭배하는 뉴라이트 신앙과 관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p.183)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무조건 본뜨려고 하고 있다. 분배를 외면하고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가진 자들의 본딩(bonding: 동질적 집단 내의 유대감) 조직력만 키우는 개발독재를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곧 문명이라는 편협한 역사관이 아니라면 상상해내기도 어려운 시대착오다. “안병직과 이영훈은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주도한 하나의 집단을 상정한다. 개항기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흥 지주층이 일제에 협력하면서 고등교육을 받아 전문 기술을 가진 실력자 집단으로 자라났고, 대한민국에서도 경제 발전의 주축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집단이 지금 ‘고소영’ ‘강부자’로 이어졌다고 여기기 때문에 현 정부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친일파 청산’의 실패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브리징(bridging: 이질적 집단들 사이의 연대감) 조직력을 차단하는 ‘명박산성’은 이 집단의 본딩 조직력을 지키는 울타리이기도 하다.”(p.115)

우리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괴물 같은 형상들의 난봉은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다. 은행을 재벌의 금고로 만들겠다는 은행법이나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겠다는 세금 정책이나, 없는 자들의 간까지 빼먹겠다는 최저임금 삭감 논의나, 녹색뉴딜을 표방하는 경제 살리기 운동이나, 좌편향되었다고 우기며 ‘국가 건설을 둘러싼 노선 투쟁에서 이승만이 승리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박정희 주도 아래 근대화 혁명이 성공을 거뒀다는’ 식의 역사 교과서 수정이나, 이러한 정책에 눈과 귀와 입을 막겠다는 신문·방송법과 통신비밀 보호법 등의 악법은 모두 뉴라이트의 부산물이다.

결국 얼마 전에 이명박 불도저 정권은 6명의 생명을 죽음으로 모는 끔찍한 용산 참사를 일으켰다. 정권은 홍위병들을 동원하여 망자들을 욕보이며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그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호명된 괴물들이다.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이미 죽은 이 몸뚱이들의 속은 좀비들처럼 물컹물컹 썩어 있다.

지난 12월 그리스에서 16세 소년이 경찰의 폭력으로 살해된 뒤 노동자들의 대중항쟁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정책 반대 투쟁으로 이어져 그리스 우익 정권의 정책이 벽에 부딪쳤다. 또 프랑스에서는 1월 29일 250만 명의 시민들이 교사의 대량 해고, 연금법 개악, 공공서비스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며 행진을 벌였다. 지난여름 우리 또한 촛불에 대한 뜨거운 기억이 있다. 그리고 국민 주권에 대해 고민했고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와 시민불복종과 직접행동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또한 이제 우리는 모이는 방법과 모여 흐르는 방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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