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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충남지역 1987년 노동자대투쟁
첨부파일 -- 작성일 1987-08-07 조회 263

대전충남지역 1987년 노동자대투쟁

 

  

대전·충남지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단지가 집중적으로 육성되지 않았던 탓에 노동자 투쟁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특히 대전지역은 전형적인 교통·소비중심의 도시로 다른 도시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고 서비스업이 발전된 도시여서, 전체 노동자 수가 12만 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중 제조업 노동자들은 겨우 5만 명 남짓이었다.

 

제조업의 경우 거의 절반이 섬유업체로 대기업인 충남방적(6,000여 명), 풍한방직(1,800여 명), 금하방직(1,200여 명)과 같은 방직공장과 50200여 명에 이르는 중소규모의 봉제공장이 대전과 충남 전역에 걸쳐 산재해 있었다. 기계금속과 화학 등을 포괄하는 대전공단은 소규모 사업체 90여 개, 15,000여 명을 넘지 않는 작은 공단으로 경제적 파급효과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경제적 파급효과를 보면 대전피혁, 동성피혁을 중심으로 피혁업이 전국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고, 제지업도 전국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업들은 대부분 효성그룹에 속해 있었다.

 

1987년 당시 대전지역 노동조건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저임금과 비인간적 대우를 꼽을 수 있다. 20년 경력의 일류 선반기술자 하루 일당이 1만 원을 넘지 못했고, 대부분의 섬유업계가 정부에서 정한 최저임금제조차 지키지 않아 노동부에 고발당하는 등 평균임금이 20만 원을 넘는 회사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또한 섬유와 봉제업체 여성노동자들의 비인간적 대우는 그 정도를 넘어서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투쟁이 살인적인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 요구보다 나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하는 관리자들의 일상적인 폭행, 구타, 성폭행, 심지어 각성제 투여 등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문제 삼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각성제 투여 사건은 이후 1988년 대화실업에서 사실로 확인돼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이러한 열악한 조건임에도 역사적으로 대전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해방 직후 방직업체를 중심으로 노조활동이 잠시 활성화되었다가, 1970년대 남한제지에서 노조활동이 있었다. 1980년대 들어서도 별다른 투쟁이 전개되지는 않았다. 다만 1985년 성남주공에서 임금체불에 대한 집단항의 투쟁이 일어났고, 1986년에는 마신산업에서 동일한 이유로 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1985년에 있었던 성남주공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이 당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알 수 있다. 1985727일 오후 5, 대전공단 내 주물 생산업체인 성남주공에서 체불임금에 항의하는 가두시위가 전개되었다. 19846월 이후 1~2개월씩 임금을 체불해 온 성남주공에서 35개월씩 임금을 체불하기에 이르자, 노동자들은 198578, 5월분 임금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711, 7월 말까지 5월분 분할지급, 810일까지 6월분 지급을 약속받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7월 중 지급하겠다던 임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데다 725일자로 회사가 부도처리되자 15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과 퇴직금, 사원사채금, 회사에서 유용한 마을금고 재형저축 등 총 52천만 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그동안 고의로 재산을 빼돌려 은행저당을 변제해 실제로 지급 가능한 자산이 거의 없었다. 725~26일 양일간 회사 내에서 파업농성을 전개하는 한편, 각계각층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미수금장부 및 집기부품을 법원에 공증처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으나 별다른 해결조짐이 없자, 노동자들은 727일 머리띠와 어깨띠를 매고 생계대책 보장하라” “배 고파서 못살겠다는 현수막을 앞세워 가두시위를 감행했다. 이때 퇴근하는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지지를 보냈고, 공단 입구까지 약 1.5km를 왕복하며 2시간에 걸쳐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이렇게 노동운동 불모지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불길은 예외 없이 타올랐다. 전국적으로 진행된 노동자들의 대투쟁은 8월 초부터 이 지역에 옮겨붙기 시작해 8월 중순에는 대전공단을 중심으로 연이어 발생하기 시작했다. 87일 동신전선에서 어용노조 간부가 동료 노동자를 폭행한 데 항의하는 농성이 벌어졌고, 8일에는 마신산업에서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이어 812일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방적업체였던 충남방적에서 4,500여 명 전원이 참여하는 농성이 시작됐다. ()한우의 18명 무더기 해고에 맞선 복직투쟁이 대전·충남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면서 연일 67건의 투쟁이 발생하는 등 8월 하순 들어 이 지역의 실질적인 노동자들의 대투쟁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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