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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제과 파업투쟁
⦁ 시기 : 1980년 5월 12일 ~ 5월 18일
⦁ 요약 :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롯데제과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됐으나 도리어 임금이 삭감되자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삼엄한 시기였음에도 절실한 요구를 안고 전면파업을 벌여내 임금을 대폭 인상해냈으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로 노조 집행부는 정화대상으로 분류돼 해고되는 등 거센 탄압을 받았다.
1980년 당시 식품업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12시간 맞교대 장시간 노동이었다. 해태제과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8시간 노동제가 정착됐으나, 롯데제과에서는 이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야기됐다. 이른바 하후상박의 원칙이 적용되면서 남성들은 5~6%, 여성들은 8~9% 임금이 인상됐지만, 노동시간 단축으로 실제 임금은 삭감된 것이다.
1980년 5월 10일, 계장 출신 지부장이 노동조합을 차지한 지 10년 만에 가장 열세였던 민주후보 신태웅이 당선됐다. 이에 5월 12일 새벽 7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성들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의 불만이 집단화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노동조합은 즉시 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임금 20% 재인상, 상여금 400% 지급을 요구하며, 14일까지 관철되지 않으면 전면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1980년 5월 14일 오후 2시, 기한을 넘기자 2,7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즉각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농성은 5월 16일까지 계속돼 정문 점거로 발전했고, 영등포공장은 물론이고 시흥공장 노동자들까지 전원 참여했다. 작업이 중단됐는데도 회사는 여전히 침묵했다.
롯데 노동자들은 일요일인 5월 17일은 쉬고 5월 18일 다시 모일 것을 굳게 결의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이때 누가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예상했겠는가.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과 생존권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집행부는 농성에서 태업으로 투쟁방법을 바꿨다. 첫날은 20% 감소, 다음 날 50% 감소 계획이 세워졌으나 사실상 작업은 전면 중단됐다. 남부지방노동사무소장, 롯데 상무, 지부장 사이의 협상은 무산됐다. 유창순 회장은 “노동조합 안을 다 받아들이면 이 회사는 망한다”며 버텼고, 지부장은 “회사가 망하면 임금인상분을 환원시키겠다”는 각서를 쓰고 상여금 400%, 임금 12~15% 재인상이 이루어졌다. 8시간 노동제로 환산하면 대략 78%의 대폭적인 임금인상이었다. 모든 투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5․17이라는 국가 비상사태하에서 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롯데제과 노조 집행부는 계엄 당국에 확실한 정화대상으로 취급됐다.
1980년 6월 2일, 부지부장과 부녀부장이 영등포경찰서로 연행됐고, 지부장도 20일간의 구류처분 후 집요한 정화조치에 따라 회사에서 강제 사직당했다. 조합원 중 김수배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고, 연행됐던 여성조합원들도 부천의 노동청년연수원에서 순화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살벌했던 1980년 5월에 파업투쟁을 성사시켰던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와 단결된 힘, 불굴의 투지는 역사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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